로버트 멘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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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호주의 정치인. 제12대 호주 총리로, 총 두 번의 총리를 재임하여 역대 최장기간 재임을 한 총리이다.
변호사 출신으로 빅토리아 주 총리를 지냈으며 법무 장관, 산업부 장관 등도 역임했다. 1939년 4월 총리에 올라 같은 해 9월 호주의 2차 대전 참전을 승인했고 1941년 영국에서 4개월이나 회의에 참석했는데 귀국해보니 당의 지지를 잃어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1944년 자유당이 창당됐을 때 참여했으며 45년 8월 당 대표가 되었다. 1949년 총선에서 자유당을 이끌고 승리해 8년만에 총리에 복귀해 1966년까지 호주 12대 총리를 지냈다.
2. 생애[편집]
1894년 12월 20일 호주 제파릿(jeparit)에서 4남 1녀중 넷째로 태어났다. 11살 때 누나와 함께 외할머니 집으로 보내졌고 어릴 때부터 공부를 상당히 잘 했다고 한다. 1910년 그의 가족들은 멜버른으로 이사했으며 1913년 멜버른 대학 법학과에 입학해 학사와 석사를 따고 졸업했다. 재학 시절 학생회 대표와 사내 잡지 편집자 일을 하기도 했다. 1차 대전이 터지자 1915년부터 1919년까지 Melbourne University Rifles 라는 시간제 민병대 부대에서 복무했는데 소총 사격을 포함한 각종 기술에서 그는 평균 이하였다고 한다.[2]
1915년 1월 6일 소위로 임관했으며 동시대의 많은 호주 청년들과 달리 그는 해외 파병에 자원하지 않았다. 그의 형 2명은 해외 파병을 다녀왔는데 훗날 변호사로 일한 형 프랭크 멘지스(1892~1978)가 밝힌 바에 따르면, 가족 회의를 통해 로버트가 해외 파병에 자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당시 부모님은 이미 장남과 차남이 해외로 파병을 가는데 이 정도면 충분히 국가를 위해 애국했다고 생각해 셋째 아들까지 파병가는 것은 원치 않았으며, 당시 아버지 제임스의 건강이 안 좋았던 것도 이런 결정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하여간 그리하여 로버트 멘지스는 1916년 멜버른 대학 법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증을 딴 뒤 빅토리아 주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29년 호주 국민당(Nationalist Party) 소속으로 처음 빅토리아 주 의원에 당선되었으며 1932년 5월부터 34년 7월까지 주 부총리를 역임했다. 그러다 1934년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중앙 정계에 입성했고 조셉 라이온스 총리에 의해 법무장관으로 임명되었다.[3]
1939년 라이온스 총리가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멘지스는 당수에 선출되었고 총리가 되었다. 허나 첫번째 총리 시절에는 제2차 세계 대전 발발과 함께 전시 대처에 미흡하다는 비판을 받았고, 결국 1941년 총리직을 노동당 존 커틴에게 넘겨주고[4] 당수직에서도 사퇴하였다.
이후 당수로 재선출된 멘지스는 자유당 창당에 참여했고, 1949년 자유당을 이끌고 총선에서 승리하여 다시 총리직에 올랐다. 두번째 총리 시절에는 냉전 시기의 도래와 함께 장기집권에 성공했으며[5] ,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 당시 파병을 하기도 했다. 1950년대 후반에는 공산당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국민투표를 발의하기도 했으나 부결되었다.
개인적인 신념은 리버럴 우파에 가까웠다고 평가받는데, 실제 개인의 자유를 중시했다고 한다. 21세기 들어 줄리 비숍 전 외무장관은 "맬컴 턴불 연방총리의 취임은 로버트 멘지스 경의 정신을 되살리기 위함이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는데, 동성애나 호주의 공화제 전환[6] 등을 지지한 맬컴 턴불의 리버럴한 성향을 보면 호주에서 로버트 멘지스의 성향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알 수 있는 한 단면.
1978년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였다.
3. 여담[편집]
- 부모가 둘 다 호주에서 태어난 최초의 총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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